“세계적인 브랜드가 윤여정 선생님에게 ‘입어달라’ 매달렸다. 돈을 들여서라도 비싼 비용을 기꺼이 내가며 윤여정이 선택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이 멋진 ‘대배우’는 화려한 것들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26일(한국시각) 미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역사를 새롭게 쓴 윤여정의 스타일을 책임진 앨빈 고(Alvin Goh)의 말이다. 그는 미국 뉴욕포스트 페이지 식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을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초고가 의상만 250벌이 넘는다”면서 “화려한 장식의 의상도 많았지만 윤여정 선생님은 ‘난 공주가 아니다. 난 나답고 싶다’며 물리쳤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출신으로 현재 홍콩에서 활동하고 있는 앨빈 고는 그동안 엠마 왓슨, 틸다 스윈턴, 우마 서먼, 다코타 존슨, 마고 로비 등 유명 할리우드 스타들의 의상, 메이크업 등 전체적인 스타일과 패션 전략을 담당해왔다. 윤여정과는 이달 초 열린 미국배우조합상(SAG) 때부터 호흡을 맞췄다.
윤여정을 ‘YJ’라고 부른다는 그는 “내가 만나 본 사람 중 세상에서 가장 유쾌하며, 모두가 꿈꾸는 그런 할머니”라고 말했다. 한 달 정도 윤여정과 쉴새 없이 대화를 나눴지만 직접 만나보진 못했다. 코로나 감염증 때문에 모든 작업이 줌(zoom) 화상회의로 이뤄졌다. 홍콩-서울-뉴욕-LA를 동시에 연결하느라 새벽 3시에 자고 오전 6시에 일어나기 일쑤였다고. 협찬이 쇄도해 전화통이 불이 날 지경이었다. 그럴 때마다 윤여정은 “앨빈이 피곤할까 봐 걱정된다. 한국에 꼭 오라. 내가 맛있는 밥을 해주겠다”고 위로했다.
그는 “스타들이라면 더 돋보이고 싶을 텐데, 윤여정은 아니었다”면서 “그녀가 한 말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이렇게 전했다. “난 눈에 띄지 않아도 된다. 커다란 보석도 필요없다. 너무 화려한(crazy) 스타일은 싫다.” 초고가 거대 보석들 협찬도 줄을 이었는데 윤여정이 ‘너무 무겁다. 손을 들 수가 없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이날 의상 역시 세계적인 명성의 초호화 브랜드가 아니었는데도 윤여정은 “내 스타일”이라며 선택했다고 했다. 구김이 생기지 않는 편안한 원단이었다. 이날 원래 의상도 화려한 천이 덧대 있었는데 모두 떼어냈다. 윤여정은 “난 공주처럼 보이기 싫다. 그냥 내 나이답고 싶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새벽잠을 설치며 일하는 앨빈을 향해 “이제 그만 입어봐도 될 것 같다. 너무 피곤해 보인다. 이걸로 충분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여기에 쇼파드 하이주얼리 제품과 보테가 베네타 슈즈, 로저 비비에 클러치를 곁들였다. 이들 브랜드는 적지않은 가격의 제품이긴지만, 윤여정이 평소에 추구하는 간결한 디자인에 포인트를 주는 스타일로 격조를 더했다.
단아한 스타일로 미국 패션지 보그 등으로부터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된 윤여정은 이날 시상식 무대 뒤에서 드레스 위에 카키색 항공점퍼를 입어 일명 ‘코리안 할머니 시크’를 연출했다 다. 항공 점퍼로 유명한 미국 알파인더스트리와 패션 브랜드 꼼데가르송이 협업한 제품이다.
[최보윤 기자 spic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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